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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프란치스코의 부활 성야 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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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프란치스코의 부활 성야 미사 강론   “안식일 다음날”(마태 28, 1) 여인들은 무덤에 갔습니다. 이렇게 이 거룩한 성야 미사는 안식일과 함께 시작됩니다. 우리는 금요일의 십자가에서 부활대축일의 알렐루야로 가는 길을 간절히 기다림에 따라 우리는 성삼일의 이 날을 그냥 지나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 성 토요일의 위대한 침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날 그 여인들의 입장에 있는 우리 자신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처럼 그 여인들은 너무나 갑자가 일어난 예상치 못했던 비극, 고통의 드라마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보았으며,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고통은 두려움과 함께 뒤섞였습니다. 스승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도 같은 운명으로 고통스러웠을까요? 그리고 또한 거기에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재건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고통스러운 기억, 잘려진 희망. 우리에게처럼 그들에게도 그것은 가장 암흑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여인들은 망연자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슬픔과 후회의 침울함에 굴복하지 않았고, 자기 자신에게 매몰되지 않았으며 현실로부터 도망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몸에 바를 향유를 집에서 준비하는, 단순한 하지만 위대한 무언가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마음의 어두움 속에서 그들은 자비의 불꽃을 피웠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기도와 희망 안에서 그 토요일을 보내셨습니다. 그 날은 성모님께 봉헌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모님은 주님에 대한 신뢰로 슬픔에 응답하였습니다. 이 여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안식일의 어둠 속에서 “그 주간 첫날의 새벽을 위해”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역사를 바꿀 것입니다. 땅에 묻힌 씨앗처럼 예수님은 세상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꽃피우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도와 사랑으로 이 여인들은 이 희망을 꽃피우는 것을 도와드렸습니다. 이렇게 슬픈 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여인들이 하였던 일, 바로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돌봄, 애정 그리고 기도의 작은 몸짓으로 말입니다.   새벽에 여인들은 무덤에 갔습니다. 거기에서 천사는 그들에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분에 여기에 계시지 않다. 부활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덤에 서 있는 채로 생명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희망을 주시는 분,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두려움에 굴하지 마라. 이것은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이것은 오늘 날 우리에게도 주어집니다. 바로 오늘 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바로 그 말씀입니다.   오늘 밤 우리는 우리에게서 결코 앗아갈 수 없는 근원적인 권리, 희망의 권리를 얻게 됩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부터 오는 새롭고 살아있는 희망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이것은 가벼운 혹은 격려의 공허한 말, 공허한 미소가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가 얻을 있는 것이 아닌 바로 하늘에서 오는 선물입니다. 지난 몇 주간, 우리는 우리 인류애의 아름다움에 매달리며 그리고 우리 마음 안에서 격려의 말이 솟아오르도록 하며 계속 되뇌었습니다. “다 잘 될 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두려움이 자라며 가장 대담한 희망마저 사라질 수 있지만 예수님의 희망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무덤에서조차 생명을 가져오셨기에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이 선하게 작용하도록 하실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놓으십니다. 무덤은 들어간 사람이 절대 떠나지 않는 곳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음이 있는 곳에 생명을 가져다주기 위해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무덤의 입구를 가로막았던 돌을 치우신 예수님은 또한 우리 마음이 돌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체념하지 맙시다. 희망을 돌로 가로막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는 희망할 수 있고, 희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찾아오셨고 고통과 절망 그리고 죽음의 우리 상황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의 빛은 무덤의 어둠을 물리치십니다. 오늘 그분은 우리 삶의 가장 어두운 곳까지 빛이 스며들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의 마음 안에 희망을 묻어버렸을지라도 포기하지 맙시다. 하느님은 더 위대하십니다. 어둠과 죽음에는 마지막 말이 없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하느님과 함께라면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이 단어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자주 하신 말씀입니다. 어려운 차지의 사람을 격려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한 번 말하였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일어나라. (예수님께서) 너를 부르신다.”(마르110,49) 우리의 필요에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는 분은 부활하신 분, 바로 그분이십니다. 만약, 당신의 여정에서 약하고 연약함을 느끼거나 혹은 넘어지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도움의 손길을 내미시며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만쪼니의 소설에 나오는) 돈 아뽄디오처럼 “용기는 당신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정말 당신 스스로에게 이것을 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선물로 받을 수는 있습니다. 당신이 해야 하는 것은 기도 안에서 당신의 마음을 열고 당신 마음의 입구에 놓인 돌을 살짝 치움으로서 예수님의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예수님께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 제게 오시어 두려움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리고 저에게도 말해주세요. ‘용기를 내어라.’” 주님, 당신과 함께 저희는 시험에 들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슬픔이 우리 안에 스며들더라도 우리는 희망 안에서 힘을 얻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우리를 당신과 함께 부활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우리 밤의 어둠 속에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우리의 불확실성 한가운데 있는 확실성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의 침묵 안에서 말씀하시며, 그 무엇도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부활절의 메시지,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여기에는 두 번째 부분인 파견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마태 28,10)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고 계십니다.”라고 천사가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보다 먼저 가십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보다 먼저 가십니다. 삶과 죽음 안에서 주님이 우리보다 앞서 가신다는 것을 아는 것은 용기를 줍니다. 예수님은 그곳에, 우리의 매일의 삶에 우리가 희망을 가져다주기를 원하십니다. 제자들에게 갈릴래아는 또한 기억의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부름을 받은 곳이기 때문이죠. 갈릴래아로 돌아간다는 의미는 우리가 하느님께 사랑을 받고, 부름을 받은 것을 기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갈릴래아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초대 덕분에 태어났고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상기하며 우리 각자의 갈릴래아서 이 여정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 지점이 바로 특별히 위기와 비극의 시간 안에서 우리의 갈릴래아를 기억하여 우리가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지점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갈릴래아는 그들 출신 지역에서, 예루살렘에서 제일 먼 지역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리학적인 측면만이 아닙니다. 갈릴래아는 또한 거룩한 도성의 거룩함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갈릴래아는 다른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살던 곳입니다. 그곳은 “이민족들의 갈릴래아”(마태 4,15)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그곳에 보내시고 그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도록 요청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할까요? 희망의 메시지는 우리의 신성한 장소에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안심할 필요가 있기에 그리고 만약 “생명의 말씀”(1요한 1,1)을 전해 받은 우리가 그것을 전달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위로를 전하고, 다른 이들의 짐을 지며 격려하는 그리스도인, 죽음의 시대에 생명의 전달자가 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모든 갈릴래아에서, 우리가 속하고 또 우리의 한 부분인 인간 가족의 모든 영역에서-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들이기 때문에- 생명의 노래를 전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죽음의 울부짖음이 그치도록 합시다. 더 이상의 전쟁이 없도록 합시다. 무기를 생산하고 거래하는 것을 중단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총이 아닌 빵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낙태와 무고한 생명의 살해를 끝내도록 합시다. 충분히 가진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생필품조차 없는 사람들의 손을 채워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에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발, 우리를 만나기 위해 무덤에 들어가서부터 무덤에서 나오기까지 긴 여행을 하신 발을 붙잡습니다(마태 28,9). 이 여인들은 죽음을 짓밟고 생명의 길을 연 발을 붙잡았습니다. 오늘, 희망을 찾는 순례자로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께 매달립니다. 우리는 죽음에서 등을 돌리고 당신께 우리의 마음을 엽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생명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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