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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프란치스코 부활 5주일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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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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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프란치스코의 부활 5주일 강론

예수님의 고별사인 이 복음서 구절에서 (요한 14: 1-14) 예수님은 아버지께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며,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 12-14)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의 이 구절은 아버지께로 승천하는 선언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의 삶에 언제나 함께 하셨으며 예수님은 이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여러 번 예수님은 새들과 들판의 꽃들을 돌보아 주시듯 우리를 돌보시는 아버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그리고 제자들이 당신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하였을 때 예수님은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언제가 아버지로 되돌아갑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이것은 매우 강렬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기도의 무한한 힘에 대한 문을 여는 듯합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요한 14: 11)

아버지께 대한 이 신뢰,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아버지께 대한 신뢰. 기도에 대한 촉구, 왜냐하면 기도를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할 때에는 같은 용기와 솔직함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선조인 아브라함이 소돔을 구하기 위해 하느님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창세 18,20-33). “만약 그 수보다 적으면? 적으면? 적으면? ...” 참으로 아브라함은 어떻게 교섭하는지 알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이런 용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그 수를 줄여 주실 수 있으신가요? 조금 더 적게, 더 적게...” 언제나 기도 안에서 투쟁하는 용기. 왜냐하면 기도하는 것은 투쟁하는 것, 하느님과 투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를 생각해 봅니다. 두 번이나 주님은 당신 백성들을 멸망시키려 하셨으며(탈출 31: 1-35; 민수 11; 1-3), 모세를 다른 민족들의 우두머리로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모세는 “아니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아니요”라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이렇게 기도한다면 이것은 적절한 것은 아닙니다.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하느님께 예수님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기도 안에서의 용기, 기도 안에서의 솔직함. 이것은 설교하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제 1독서에서 초기 교회에서의 갈등에 대해 들었습니다. (사도 6: 1-7) 그리스계 유다인들은 그들의 과부들과 고아들이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불평하였습니다. 사도들은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사도들은 성령의 감도하심을 받아 부제직을 신설합니다. “선하고 봉사의 돌봄을 할 수 있는 7명의 사람들을 찾아보자.”(사도 6: 2-4 참조) 부제는 교회 안에서 봉사의 관리자입니다. 그리고 불평을 하던 사람들은 필요를 채워하는 좋은 돌봄을 받았으며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기도하고 설교하는 것은 주교의 임무입니다. 이 힘으로 주교의 첫 번째 임무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우리가 복음에서 느낀 이 힘과 함께 주교는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주신 용기를 가지고 아버지에게 간 바로 첫 번째 사람입니다. 주교의 첫 번째 임무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하고 말씀을 선포하는데 전념합시다.”

저는 어느 거룩하고 착한 본당 신부님을 아는데, 그 신부님은 어느 날 주교님을 만나자 겸손하게 물었습니다. “주교님, 하루에 얼마나 기도하세요?” 그리고 언제나 이렇게 말합니다. “왜 첫 번째 임무가 기도인가요?” 왜냐하면 이것은 그 공동체를 위한 공동체 우두머리의 기도이고, 자신의 백성들을 돌보기 위해 하느님께 중재의 기도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교의 첫 번째 임무인 기도하는 것. 그리고 주교가 기도하는 것을 본 신자들은 기도하는 것을 배웁니다. 왜냐하면 “일을 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성령께서 가르쳐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주 조금 (일을) 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일을 하는” 것은 바로 그 분이며, 기도는 교회가 앞으로 나아가도를 하는 원동력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교회의 우두머리인 주교들은 반드시 기도와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베드로의 말은 예언자적입니다. “부제들이 이 모든 일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돌봄을 받았고 문제들이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기도하고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좋은 주교들, 좋은 사람들이 많은 일, 재정, 이런 저런 일들로 바쁘게 지내는 것을 보는 것은 슬픕니다. 기도가 첫째 자리에 놓여야 합니다. 그다음 다른 일들이 놓여집니다. 하지만 다른 일이 기도의 자리를 대신할 때 일을 잘 진행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힘은 강력하다는 것을 복음서의 예수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들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요한 14,12-13) 교회는 기도, 기도의 용기 안에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이것 없이는 우리가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살아갈 수 없다는 교회는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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