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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의 것 임은 나의 것

작성자

최성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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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

임은 나의 것 나는 임의 것(아가 3,16)


  오늘 2월 2일은 주님 봉헌 축일이다. 루카복음은 마르코나 마태오보다 예수님의 일생 특히 영∙유아시절에 대해 항상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갈 뿐 아니라 자세하게 보도를 한다. 인성을 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코와 마태오는 예수의 세례만을 보도하지만 루카는 ‘할례와 정결례’를 보도하고 있다. 예수님은 태어나셔서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으셨다. 여드레를 채운 이유는 이렛날은 안식일이기 때문이다. 할례와 정결례는 모든 존재는 근원적으로 하느님의 것이라는 봉헌의 의미를 담고 있다.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첫아들은 모두 나에게 봉헌하여라, 사람뿐 아니라 짐승의 맏배도 나의 것이다.(탈출 13,2) 성경의 이러한 내용에 대해 우리의 교회는, 남자와 첫아들만 특별 예외 조항이 아니고, 첫아들 외에 다른 모든 아들들과 딸들, 심지어 모든 사물과 존재가 전부 하느님의 것이고, 인간은 그저 관리자일 뿐이라고 성경적 ”분리“와 ”거리두기“를 제시한다. 인류가 인간이 이 간단하지만 심오한 내용만 잘 인지하고 실천했다면, 인류역사에서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예수님이 사람이 되시어 오시고 십자가에 수난하시는 수고도 하실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었다. 할례는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하느님의 것임을 몸(포피)에 새기는 계약의 표징’으로(창 17,11), 예레미야서 버젼으로라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리라"(30,22)이며, 아가서 식대로 하면 “나는 그이의 것 나의 연인은 나의 것”(아가 3,16a)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정결례는 이스라엘의 거룩함을 회복하는 전례이다. 한 처음 창조된 최초의 인간은 본래 하느님을 닮아 흠 없이 완전하고 거룩한 존재였다. 그러나 원죄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 거룩함을 잃고 실추시켰기에, 이스라엘은 이 거룩함의 회복을 위한 온갖 제사와 제물 규정을 만들었다. 태어난 아기가 사내아이면 칠 일간 부정하고, 여자 아기는 십사일 동안 부정하다. 남자 아기를 낳은 산모는 피로 더렵혀진 몸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 남자아기를 낳았을 경우 삼십일을, 여자아기를 낳았을 경우 육십육일 동안 집에 머물러야 했다. 그리고 정결례를 치르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의 사제를 찾아 번제물과 속제 제물을 바치고 정결례를 치러야 비로서 정결해질 수 있었다(레위기 12,1-8) 그런데 오늘 루카복음 저자는 구약에 나타나는 이 할례와 정결례의 구태의연한 내용보다는 다른 것에 관심이 있다. 예수께서 신적인 존재이심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사회적 전통과 관습에 충실하셨다는 것이며, 인간 존재의 사명이 평생을 두고 하느님께 대한 봉헌의 사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어지는 두 예언자 시메온과 한나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모친 마리아에 대해 예언하는 내용을 보면, 레위기에서 제시하는 거룩함의 회복을 위한 정결례 전례가 핵심이 아닌, 메시아 예수에 대한 예언이 더 핵심이다. 후일 이 점을 통찰한 교회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는 죄 외에 모든 인간과 동일하고, 성모님께 대해서도 참 하느님이요 참 인간이신 예수의 신성과 연관하여 “무죄한 잉태”(1854년)를 합당하게 선언한 사실도 루카의 신학적 의도를 증명한다. 예수는 이스라엘로 대표되는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게도 하고 쓰러지게도 하는 분이다. 사실 예수께서는 오직 모든 사람을 일어나도록 촉구하시는 분이지만, 사람들의 제 자신의 자유의지의 분별과 선택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저 저신 스스로 쓰러지기도 하고 남을 짓밟고 쓰러트리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 2월2일은 모든 축성자들의 축일이며 나의 수도 여정 봉헌 축일이기도 하다. 1990년 2월 2일에 착복했다. 민간인 복장에서 멋진 무채색 까망색의 수도 복장의 그 놀라운 변신이라니...수도복 속의 모습이 스스로에겐 참 낯선데, 본가와 수도가족들이 아름다운 격려를 해주었다. “잘 어울린다”고. 1992년 2월 2일엔 첫 서원을 했다. 하느님과 공동체 앞에 서원 낭독문을 읽는데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목소리를 흔들어대기에 눈물 마려울까 걱정되어 용맹무쌍한 큰 소리로 낭독문을 읽었다. 후배수녀가 말했다. “언니, 마이크 깨지는 줄 알았어”. 1998년 2월 2일 종신서원식을 발했다. 내 인생과 수도여정에  큰 발자욱의 역사적인 날, 반평생 의미 있는 사람들과만 오붓하게 함께하고자 가족과 친지들을 그저 10명 이내로 초대하였다. 그런데 웬걸? 소임지 본당 교우들이 대형버스와 봉고차로 만원을 이루어 참석해 주었다. 내 모습을 유심히 본 교우 한 분이 말했다. “그렇게 좋아요? 그저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더만요” 아무도 누구도 주석을 달지 않았는데 혼자 침묵 가운데 주석을 달았다. ‘그분의 그 말에 책임지고 살아야겠다. 좋아서 입 다물어지지 않는 그날으 기쁨과 희열의 삶과 여정으로......“나는 임의 것, 임은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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